우리가 흔히 미디어나 책에서 접하게 되는 ‘청부살인업자’들은 포식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보통 젊은 나이에, 누가 봐도 훤칠한 외모를 가지고 있으며, 언제나 잘 벼려진 날카로운 모습. 그러나 이 책에서 그리는 ‘청부살인업자’의 모습은 다르다. 그들의 삶도 여느 사람과 다를 바 없이 시간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며, 나이를 먹는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모습을 그려본 적이 없다. 이 책에서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맹점의 시간에 놓인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노쇠해져서 예전같지 않은 몸과 자꾸만 틈이 생기는 기억. 어쩌면 그녀가 가진 직업에 가장 큰 위협이 되는 그런 상태이다. 하지만 그녀의 하루는 계속해서 흘러간다. 나이를 먹었다는 이유로 불필요한 동정을 받으며, 또 과한 무관심 속에서도 그녀는 꿋꿋하게 그녀의 일을 해나가고 있다. 예전의 제 살인으로 인한 피해자로부터의 위협 속에서도, 원치 않게 스스로를 들켜 버린 이방인으로부터의 관심 속에서도. 그녀는 나름대로의 삶의 방식과 지혜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인간에게 필연적인 ‘사라짐’, 즉 상실 속에서도 그녀는 온 힘을 다해 살아가는 방식을 배우고 있다는 점이 끝까지 책을 덮지 못하고 숨을 참은 채 단 숨에 읽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