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쇄 미정 작가 가와사키 쇼헤이 출판 GRIJOA 므키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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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취미 중 하나는 '읽지 않을 책 사기'이다. 농담이 아니다. 읽지 않은(못한) 책이 책장 한 쪽을 빼곡히 채우고 있고, 인터넷 서점 장바구니에는 이걸 언제 담았나 싶기도 한 책이 쌓여 다 주문하면 90만원 정도가 된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내 이 취미가 많은 출판사의 사기를 진작시킬거란 걸. 확신할 수 있다. 사지 않고 읽지 않고 평가하는 것보다 어쨌든 구매라도 하는 게 점점 불황에 빠져가는 도서출판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위안하던 중 발견한 이 책. 만화책이다. 일본작가가 일본의 출판업계 현실에 관해 쓴 일본책이다. 그림체가 귀엽고 친근하다. 표지에는....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근무하는 주인공이 단호하게 말하는 그림. "책이 팔릴 리 없어."
    제목, 중쇄 미정.

    중소 출판사의 편집자인 주인공이 일하는 모습과, 비록 일본의 얘기이긴 해도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중소기업 직장인들이 처한 불합리한 상황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나름대로 꿀팁 같은 것도 있다. 편집자가 되었을 때 마감기한을 넘겨버린 담당작가를 잘 달래어 작업하도록 하는 기술이라든지... 작가 스스로가 편집자이자 만화가이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거겠지.
    표정변화가 드러나지 않는 그림이지만 어두운 현실을 드러내는 놀라운 힘을 가졌다. 박봉에 온갖 책임을 떠맡고 매일 밤샘, 건강을 해치고 취미를 즐길 시간도 없는, 꼭 출판사의 현실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일을 사랑하기 너무나 힘든 현대사회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특히나 주인공이 편집자이기 때문에 편집자의 고충이 집중적으로 조명되어 있는데, 잠시나마 출판사에서 일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가 곧바로 취소했다.

    중소 출판사는 살아남기 힘들다. 책 속 사장은 어차피 돈 벌이가 되지 않을 일이니 문화를 만드는 데에 일조하라며 직원들을 위로한다. 멋진 말이다. 위로가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찜찜한 기분으로 책을 덮다가 문득 보았다. 주인공이 '책이 팔릴 리 없다'고 말하는 겉표지를 넘기면 속표지의 주인공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래도 난 책을 만들 거야."

    '그래도' 라고 말해주는 이가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읽지 않을 책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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