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화한 마음 작가 전중환 출판 휴머니스트 허종헌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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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펼치기 전부터 눈에 확 튀는 단어들로 무장하고 있다. ‘진화심리학은 사이비 과학인가?’, ‘우생학 혹은 성차별주의인가’ 같은 문장이 표지에 나타나 이미 읽기도 전에 독자의 시선을 끌어버린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독자들이 책을 펼치고 분노하지는 않을까, 이미 등을 돌렸지 않았을까 굉장히 조심스러워하는 태도가 엿보인다. 이런 것들로 추측하건대 저자는 독자들이 어떠한 기울어진 관점 없이 그저 학문으로서 이 책을 바라봐주길 바랐던 거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읽는 초반에 굉장히 분노했었다. 정말이지 혼자 격노해서는 책에 밑줄까지 그어가며 이 부분은 굉장히 일반화를 시킨 건 아닌가, 이 부분은 이미 전제를 깔고 연구를 했기에 편향된 결과를 낳은 것은 아닐까하는 의문들과 반론들을 여백에다가 빼곡히 적어가며 읽었다. 그러나 며칠 동안 이 책을 읽으며 진화심리학을 이토록 부정하며 분노까지 하는 나의 태도를, 다행히 나는 늦지 않게 눈치 챘다. 내가 편향된 인간인 것을 눈치 챘다. 이 세상에는 다른 전제에서 시작된 학문들이 각자 서로 상충하며 존재하고 있는데 나는 고작 한 개인으로 나의 철학에 상충하는 학문들을 완전히 부정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마치 타인은 내 앞에서 최대한 논리적으로 말하고 있는데, 나는 열심히 말해주는 그 사람을 향해 이미 전제가 틀렸다며 부정하고서 귀를 막고 있던 꼴이었다. 그 순간, 나는 이 책에 대한 마음가짐을 달리하기로 결심했다. 이 책, 진화한 마음의 가장 근본이 되는 사상을 꿰뚫고 이러한 전제에서 어쩌다가 이런 결과물까지 도출할 수 있게 되었을까, 모든 과정들과 결과들에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호기심을 가지고 이해하고 싶어졌다. 그렇게 마음을 비우고 다시 바라본 이 책은 꽤 흥미로웠고, 생각보다 나의 철학에 상충되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내가 쌓아온 사상에 모순이 있다는 것도 발견하게 해주었다. 이제부터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느낀 사상에 대해, 또 내가 이 책을 읽고 이전에는 풀어내지 못했던 질문들의 답에 조금 더 가까워진 것을 적고, 마지막에는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과 그래서 이 책을 읽고 찾은 내 사상의 모순은 도대체 무엇이었는지 또 어떻게 나의 모순을 해결했는지 적으며 끝맺으려 한다.
    왜 길고양이는 귀엽고, 길비둘기는 더럽게 느껴지는 걸까. 쓸모없지만 내가 최근에 꽤 자주, 그리고 불필요할 정도로 깊게 고민하던 것이다. 길고양이와 길비둘기는 사는 곳이 비슷하며, 사실 몸에 스치는 것들이나 먹는 것들의 오염정도도 꽤 비슷할 텐데 왜 우리는 길고양이는 귀여워하지만 비둘기는 역겨워하는 걸까. 더 나아가 사람들은 왜 하수구 옆을 지나가는 바퀴벌레에는 기겁을 하지만, 하수구 옆을 총총 뛰어다니는 참새들에는 기겁하지 않는 걸까. 나는 이것이 너무 궁금했다. 그리고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는데, 이러한 행태는 사람들의 편견들이 모여 만들어진 하나의 이데올로기와 같은 추상의 유물화로 결론지었다. 그러나 이 편견들은 대체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설명해내지 못했다. 여기에서 오래전에 멈춰버린 나를 ‘마음의 진화’는 다시금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진화심리학은 편견에 관하여 쉽게 정의 내린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진화심리학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할 필요가 있기에 진화심리학에 대해 설명하고 다시 편견에 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진화심리학은 인간들이 진화해온 방향을,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게끔 진화했다고 바라보는데 단지 몸의 구조나 외형에만 국한되어 진화한 것이 아니라 심리 역시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게끔 알맞게 진화해왔다고 주장한다. 그렇기에 진화심리학의 입장에서 편견은 인간들이 생존하며 번식을 성공시킬 수 있도록 작용하는 보호심리들이 역사적으로 쌓여 만들어진 심리라고 그들은 확고히 말할 것이다. 실제로 먼 과거의 인간은 자연 속에서 수많은 적들에게 위협을 받았기에 낯선 것에 대해 먼저 선입견을 가지는 것은 오히려 그들의 생존을 도왔다고 진화심리학은 설명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대충 앞서 내가 했던 질문의 답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도록 진화해왔기에 고양이와 참새는 귀엽고, 비둘기와 바퀴벌레는 더럽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답이 영 시원치 않다. 아직 찜찜한 구석이 있다. 바로 이 찜찜함을 ‘진화한 마음’은 깔끔히 해결해주었고 나는 이 책에서 새로움을 발견했다.
    앞의 찜찜함을 해결하기 수월하도록, 먼저 책 속에 나오는 진화심리학의 연구예시들을 살펴보자. 책을 읽다보면 다양한 심리들에 관한 유물론적이며 진화론적인 해석들이 나온다. 가령, 단맛이 황홀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자연으로부터 얻은 식량들 중 열량이 높은 식량들이 그런 맛을 냈고 우리 몸은 자연스레 열량이 높은 것을 더 많이 얻고자 이러한 맛의 감각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이것과 마찬가지로 귀여움에 관해서도 책은 설명한다. 귀여움은 인간이 자신의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해 자신의 아기들을 잘 보살피던 역사가, 넓게 확장되어 다른 인간의 아기, 혹은 아기의 생김새와 비슷한 것들에 관해서도 몸이 반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고양이와 참새는 왜 더럽게 느껴지지 않고 귀엽다고 느끼는지 좀 더 명확한 답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바퀴벌레와 비둘기와는 달리, 인간의 아기와 유사한 생김새를 지녔기에 우연히 우리의 심리가 그들에게서 귀여움을 찾게 되어 비둘기와 바퀴벌레와는 다르게 여겨지는 것이다. 즉,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앞의 질문은 인간 심리진화 과정에서 우연히 부차적으로 나타난 양상인 것이다. 이렇듯 진화심리학은 결코 일차원적이지 않다. 단지 남자는 번식을 위해 무작정 섹스만 하려하고, 여성은 가장 멋진 남성의 아이를 얻기 위해 치장한다는 명제는 진화심리학의 입장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명제인 것이다. 진화심리학은 유물론적이며 진화론적으로 얽히고설킨 심리들이 어디로부터 시작된 것인지 파헤치는 학문으로 결코 한 명제에서 곧장 결론을 내리지 않는, 내릴 수 없는 학문인 것이다. 단지 그냥 인간은 살다보니 생존과 번식을 위해 이런 심리를 지니게 되었다는 것은 진화심리학의 입장에서 비약적인 문장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심리를 조금 더 세밀하게 추적하며 그 과정에서 부차적으로 생겨나는 심리들까지 살펴야하는 아주 복잡한 과정을 통해 연구를 진행한다. 나는 바로 이러한 사실을 ‘진화한 마음’에서 읽어내었고, 내가 편견에 휩싸여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위와 같이 세밀한 연구를 통한다 하더라도 진화심리학은 피할 수 없는 비판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그들은 차별주의자들에게 차별에 대한 근거를 어쩌면 제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그렇게 생각지 않더라도 상관없이 말이다. 하지만 책의 저자가 말했듯이, 단지 어떠하다는 사실을 폭력의 원인으로 삼는 것은 옳지 못하다. 그들은 단지 폭력을 위한 근거를 찾는 것일 뿐이고 진화심리학은 차별주의자들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진화심리학이 희생양이 되었다는 문장을 비약적이라 느낄 여지가 없지 않아 덧붙이는데, 진화심리학은 현대 인간이라면 대부분 따르고 믿고 있는 명제를 전제로 두고 진행되는 학문이다. 이 전제를 잘 이해한다면 우리는 진화심리학이 결코 차별주의자들의 편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진화심리학 속의 전제는 다양하겠지만, 내가 생각하기로 진화심리학에서 전제 중에 반드시 알아야하는 것이 두 가지 있다. 왜 하필 두 가지냐면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그 두 가지를 뜻 깊게 살폈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진화심리학이 다윈의 진화론을 바탕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문제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나머지 하나는 아주 중요하면서도 파격적이고 급진적인 명제이다. ‘인간과 동물은 다르지 않다’가 그것이다. 진화론을 바탕으로 둔다는 것에서 이미 두 번째 전제가 설명되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는 곧잘 진화론은 시인하되 인간과 동물은 다르다고 주장한다. 그렇기에 나는 이 두 번째 전제야말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진화론을 시인하면서도 인간과 동물이 다르다고 주장한 사람이었고, 바로 이 지점이 내가 발견한 나의 사상 속 모순이었다. 그러나 확실히 할 것이 있는데 진화심리학은 미래를 연구한다기보다는(미래 또한 복합적으로 예측할 수도 있겠지만) 과거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즉, 다윈의 진화론에 따라 인간을 동물로서 역사적인 심리기제를 파헤치는 것이다. 그렇기에 진화심리학의 결과를 폭력의 원인으로 삼는 인간들은 과거 속에 살며 마치 과거로 회귀하려는 존재와 같은 것이다. 인간이 사실 비합리적이고 본능에 충실한 동물이라는 것은 부정하지 못하지만, 우리는 결코 합리적이며 이성적인 행위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현재를 살며, 미래를 살아가는 존재들로 설령 과거의 심리를 지녔다고 해서 그것을 그대로 행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 책의 저자도 책의 마지막에 이러한 말을 남긴다. ‘더 나은 삶과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얼마든지 본성을 거역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진화심리학이 차별주의자들의 희생양이라는 까닭이다.

    나름대로 흥미로운 책이며 우리가 쉽게 놓치는 현실의 부분들을 이 책으로 인해 다시 마주할 수도 있다. 진화론으로 기반된 현대의 삶을 더 잘 이해하게 해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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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도 깊은 독서의 내용을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관련 전공자로서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인데요, 진화심리학이 흥미롭고, 그 개연성이 상당히 설득력있게 느껴지는 것과는 별개로 진화 심리학에서 주장하는 이론들이 충분히 검증된 것인지, 혹은 검증될 여지가 있는 (다른 말로 하면, 반박가능성이 있는) 것인지에 관해서는 이견이 많습니다. 글쓴님께서도 처음에 그런 의문을 품으셨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이 단지 글쓴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편견\'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이 책이 출판되었던 당시 이한빈씨와 이 책의 저자 간에 격렬한 논쟁이 온라인 상에 있었습니다. 관심이 있으시다면 관련 게시글들이 여전히 남아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진화심리학에 대한 반론에 대해 더 찾아보시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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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처음에 상당히 불편했지만, 다 읽고 나니 오히려 현재의 머릿속읨 여제들과 잘 어우러져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준 책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진화심리학에 심취하고 그런 것은 아닙니다. 단지 새로운 시각을 선보여줬다는 것에서 의미가 있을 뿐입니다. 관련 게시글이 어느 홈페이지에 있을지 모르겠어서, 혹시 기억나시고 달아주신다면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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