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세트(세계문학전집)(반양장)(전3권) 작가 도스토예프스키 출판 민음사 허종헌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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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대체 뭘 믿으세요?” 교회 동아리의 강사분이 갑작스럽게 내게 던진 질문이다. 내가 교회 동아리의 강연에 참여한 것은 아니고, 단지 길거리에서 사랑스러운 참새 한 마리를 구경하던 중, 그 참새를 놀래켜 날아가게 만든 장본인이 마침 이 강사분이였던 것이다. 그 분은 내게 “미안해요. (참새를) 많이 좋아하시나 봐요.”라며 말문을 텄고, ‘종교가 있냐’는 질문을 부언하셨다. 나는 “신을 믿고 있지는 않습니다.”라고 답했는데, 종교가 있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하는 사람이 흔치 않았는지, 그 분이 당황해하시며 다시 질문하셨던 것이, 바로 앞의 상황이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과는 전혀 상관도 없어 보이는 내 일상 중에서도, 아주 소소한 것을 말한 까닭은, 나는 이것이야 말로 이 책의 본질, 나아가 모든 사람들이 고민해야할 중차대한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책과 연결 지어 말하자면, 나는 바로 ‘이반’인 것이다. 신을 믿지 않고 모든 형이상학적 가치들에 물음을 던지는 인신, 굳이 따지자면 이반 카라마조프가 소설인물 중 가장 나와 가까웠다. 최근 들어 내가 남몰래 생각하던 것이 있었는데, 어느 날 이 생각의 본질이 바로 이 책,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이 말하고 싶었던 것과 다르지 않았구나! 하며 손뼉을 치고 깨달은 적이 있다. 이 상황을 설명하려면 내가 최근에 남몰래 하던 생각을 먼저 밝혀야 될 필요가 있어보인다. 하지만 이 생각을 드러내기 전에 반드시 지적해두어야 할 것이 있는데, 나 스스로 또한 이 생각들이 터무니없고 어쩌면 별 가치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음을 선언한다.
    ‘우리는 왜 천원짜리 화폐를 찢거나 불태우지 않는가?’바보 같은 질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스꽝스러움을 참고 잘 생각해보면, 우리의 지갑 속에 있는 지폐, 화폐들은 모두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는 종이쪼가리, 혹은 전자기기 화면 속의 숫자일 뿐이다. 내가 이것으로 말하고자 하는 본질적인 것은, 인간은 ‘무형의 가치’를 만들어내어 그 가치가 실재하는 듯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화폐 말고도 다양한 형체 없는 가치들이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사랑’이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연애적 감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 반려동물, 하다못해 이웃에게 향하는 친근감 같은 것을 모두 아우르는 사랑인데, 나는 현재 이 가치들의 실존자체에 대해 회의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돌아보면 꼭 이반이, 아니 내가 이반이 가지고 있던 괴로움을 양도받은 듯이 생각의 근원은 비슷하다. ‘무형의 가치들은 실존하는가’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서는 이 가치들의 근원이 ‘신’으로 나타나는데, 이반은 ‘신’을 부정하고 있기에 사랑보다는 보복을 원하고 모든 죄지은 이들의 처벌을 바라는 것이다.
    조금 더 풀어서 얘기해보자. 우리들은 모두 형체는 없지만 실재하고 있는 것들을 확고히 믿고 있다. 예를 들면 아까와 같은 화폐, 사랑 말고도, 우정, 정의, 외모, 예술, 권력의 존재를 확신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들의 기준은 정확히 무엇이란 말인가. 어떤 외모가 아름다운가. 어떤 예술이 가치 있는가. 누구의 정의가 가장 선하고 올바른가! 안타깝게도 이것들의 공통점은 모두 유동적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양성자 속의 전자들이 돌고 있는 가능성의 공간과도 같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것들은 분명 실재한다. 만질 수도 볼 수도 없지만, 분명히 이 세상에 현존하고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한 개인이 이것을 확고히 믿기에는 사회 속에서 그 믿음은 너무나도 폭력적으로 작용된다. 외모에서의 아름다움을 확고히 정하면 정할수록 그 반대인 못생긴 외모도 분명히 확고해지며, 가치 있는 예술이 분명해질수록 저질스러운 예술이라 불릴 만한 것들이 늘어나고, 사랑에 대한 자기 기준이 명확하면(특히 이러한 감정들에서 폭력성이 잘 드러난다) 타인의 사랑은 사랑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게 된다. 자기가 받아들일 필요가 없음에도 말이다. 이반 또한 이런 것들을 느낀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 자유를 택했지만 그 자유 속에서 무엇을 할지도 모르는 존재라고 한 부분에서 특히나 나는 그에게 어떠한 동질감마저 느꼈다. 최근 이런 무의미한 고민들이 너무 심각해져서, 차라리 완벽한 타인이 나를 완전히 사로잡아 명령만을 해주기를 바라기도 했다. 마치 이반이 쓴 작품, 대심문관 얘기처럼 말이다. 이 가치들의 근원을 찾기 위해 밑바닥까지 내려온 사람들은 다양하지만, 바로 이반은 사회 속에서 가치들의 근원으로 작용하는 신을 부정하기에 나는 그를 인신이라고 보았다. 신이라는 존재야 말로 이 가치들의 근원이 될 수 있는, 처음 보는 타인에게 상냥하게 웃어줄 수 있는 근본이 될 수 있는 것인데(특히 종교가 강하게 문화 속에 작용하는 사회 속에서) 이반은 신을 믿지 않는다. 이쯤에서 말해두어야 할 것이 있는데, 내가 말하는 신은 러시아 정교회에서의 신뿐 아니라 개인의 ‘신’자체이다. 물론 그것은 우리가 이미 명명한 종교들에 속할 수도 있겠고, 자신이 될 수도 있겠고, 아니면 또 어떤 형이상학적인 가치를 근원으로써 ‘신’의 자리에 가져다 놓을 수도 있겠다. 그나마 내가 찾은 도스토예프스키가 말하고자 한 바는, 바로 이것이다. 인신이 되지 말자. 무엇이 됐든 확신을 가지고 믿어야 한다. 자기 자신이라도 말이다.(인신에는 자기를 신으로 생각하는 오만한 인간도 포함되겠지만, 신과 같은 존재, 형이상학적 가치를 부정하는 자야 말로 더욱 인신에 가깝다고 보았다) 그것이 누군가의 악이라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조시마 장로처럼 삶을 사랑하고 모든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조시마 장로가 되자’는 얘기는 아니다. 단지 그야말로 가장 확고한 믿음을 가진 존재로서 소설 속에 등장했기에 언급한 것이다. 이렇게나 길게 글을 쓴 까닭은, 바로‘믿음을 가져라’라는 내가 소설 속에서 찾은 주제 중 하나를 말하고 싶어서였다.
    ‘가치들의 근원을 찾기 위해 밑바닥까지 내려온 사람들은 다양하다’고 나는 앞서서 이미 표현했다. 왜 이반만을 지칭하지 않고 굳이 다양하다고 했냐면, 나는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속에서 이반도, 알렉세이도, 조시마도 모두 이 부류에 속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알렉세이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겠다. 그는 모두의 사랑을 받는 존재로서 소설 속에 등장하는데, 그러나 자신은 모든 타인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는 없는 것에 좌절하는 등 현재 고난을 겪고 있는 성장하는 주인공이다. 다른 인물들은 각자 자신들의 방향을 확고히 정했다면, 알렉세이는 비교적 어디로 나아가야할지 감조차 못 잡는 인물인 것이다.(조시마 장로가 대략의 길을 알려주었지만, 이것은 조시마 장로의 조언일 뿐이다) 바로 이 성장하는 인물이, 총명하지만 회의적이고 부정적인 이반과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사랑할 줄 아는 신인인 조시마 장로, 바보 같지만 미워할 수 없는 미챠, 미워해야하지만 왠지 사랑하고 싶은 표도르 카라마조프...같은 괴짜 주변인들을 두고 성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사실 알렉세이에 대해서는 크게 감명을 받지 못하였는데, 단지 그가 어떤 곳에서 가방을 내려두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을지 기대될 뿐이다.

    여기까지는 독후감이고 혹시 읽으실 분이 계시거나 관심이 있으신 분이 있으시다면, 먼저 일러둘 것이 있는데 이 책은 쉽지 않다. 번역본인 점도 있지만 우선 고전 자체가 사실 어렵다. 특히 러시아나 우리에게 생소한 문화인 나라의 고전은 더더욱 어렵게 느껴지는데 그래도 도전하고 싶다면 나는 추천한다. 이 책을 읽는다면 각자 새로운 것을 얻게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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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 앞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을 수 있는, 그래서 집단적으로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동물은 인간이 유일하다고, 유발하라리는 에서 말했습니다. 흥미로운 리뷰네요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저도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그런데 과거에 복잡한 인물관계와 기나긴 배경 묘사 같은 것이 너무도 괴롭게 읽히지 않았던 기억이 있네요... 그래도 이제 이 리뷰를 읽고 소설의 테마랄까 중요한 주제를 알았으니 더 수월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추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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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번 째 줄에 사라진 도서명은 사피엔스 입니다!
      • 책이 500장 한권씩 3권까지 나와있어 굉장히 방대한 소설입니다. 그래서 아마 각자가 찾는 주제들은 다양할 테니 혹시 읽으신다면 제 감상은 신경 쓰지 않고 편하게 읽으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알려주신 책도 검색해봤는데 재밌겠네요. 한 번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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