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녹두꽃. 3 작가 정현민 출판 북로그컴퍼니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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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두꽃이라는 제목으로 짐작한 사람도 있겠지만 이 이야기는 동학농민운동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알만한 사람들은 알겠지만 SBS에서 방영된 동명의 드라마의 대본집이기도 하다. 드라마 녹두꽃은 전봉준이 고부에서 어떻게 봉기를 일으켜서 무슨 마음으로 열강 일본과 맞서는지를 보여주고 김개남, 손화중, 최경선 등 다른 동학 수뇌부들의 고뇌와 농민봉기에 대한 입장을 잘 드러내고 있는 수작이었다. 또, 동학 농민군의 사정에만 국한되지 않고 조선 정부의 입장이 어땠는지, 양반층은 농민봉기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봤는지를 잘 보여줘서 여러 세력의 입장을 고려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대의니 개혁이니 하는 어려운 말은 모르는 백성들이 소중한 것들을 자기가 지키기 위해 들고 일어나는 과정을 잘 드러내고 있어 민초의 힘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드라마이기도 했다.
    작가가 방영 전 ‘팩션사극’을 표방하며 홍보했듯이 ‘녹두꽃’에는 실존인물 외에 많은 가상인물이 등장한다. 구한말 각 계층과 사상을 대변하도록 만들어진 인물들을 행보를 따라가는 것이 꽤나 재미있었다. 사실 내가 대본집을 사면서까지 이 드라마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그러한 인물들에 빠져서였다. 상인의 입장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송자인과 과거 백성들을 수탈했지만 개심해서 동학정신을 계승하는 백이강, 조선을 개혁하고자 하는 개화파 백이현. 이 세 사람이 서로 갈등하고 협력할 때는 협력하면서 격동의 근대사 속에서 살아나가는 것을 보는 게 흥미진진했다. 특히 개화파가 차별과 부패가 만연한 조선 양반 사회에서 탄생했다는 점을 부각한 것이 신선했다. 일본에 정말 빌붙기 위해서 친일파가 된 사람도 있었겠지만 급속도로 발전한 일본의 문물, 체제를 받아들이기 위해 그를 택한 사람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결과적으로 봤을 때 그 선택은 옳지 않은 것이었고 그 죄책감을 이기지 못한 사람들은 자멸했지만 말이다. 마냥 그 사람들을 원망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나는 바로 이 부분에서 우리가 사는 현재와 연계된다고 느꼈던 것 같다. 우리가 정세를 스스로 판단하고 미래를 결정하는 사회에서 선택의 중요성이 무엇보다도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어떤 기준을 가지고 선택을 해야 적어도 엄청나게 그릇된 길을 가지 않을 수 있는걸까 생각하게 만드는 드라마였다.
    드라마 대본을 모아 만든 책이라서 어쩌다보니 계속 드라마 얘기만 하게 됐다. 책도 실제 드라마와 다른 점은 거의 없고 또, 나는 대본이 배우들이 지문을 가지고 어떻게 연기할까 상상하게 만들어줘서 더 재밌었던 것 같다.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 라는 말이 더더욱 실감나게 다가오는 지금, 100년 전 이 땅 위를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떠올려 보게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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