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의 아들 작가 이문열 출판 민음사 더듬이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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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공 민요섭은 야훼의 실재와 말씀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본문은 민요섭이 소설을 쓰며 액자식 구조로 전개되는데 그 소설의 주인공은 ‘아하스 페르츠’이다. 궁금해서 찾아본 결과 전설로 내려오는 상징적 인물이다. 이문열 작가가 이를 모티브로 아하스 페르츠의 삶을 상상해냈다. 그는 어린 시절 한 가짜 예언자와의 약속으로 인해 성전에서의 예배를 뒤로하고 그를 따라갔다. 따라간 곳에는 굶주리는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다시 성전으로 돌아온 후 아하스 페르츠의 아버지는 어린 예수와의 만남을 증언한다. 그것이 아하스 페르츠와 예수의 첫 만남(간접적이지만)이었다.

    아하스 페르츠의 본격적인 방황은 사랑하는 여자의 죽음에서 시작된다. 그는 유부녀와 몰래 사랑을 나누다가도 말씀을 거역한 것에 죄책감을 느끼며 괴로워한다. 다음날 그녀는 율법을 어긴 죄로 사람들의 돌에 맞아 죽는다. 죽기 전의 그녀와 눈이 마주치며 극심한 공포를 느낀 그는 자유의 부재를 깨달으며 다른 나라로 도망친다. 진짜 신을 찾기 위해 여러 나라를 떠돌며 다양한 종교를 접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유대교의 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함과 치명적인 허점을 발견하며 회의감을 갖는다. 이 대목에서 방대한 주석들이 있는데 작가의 섬세한 고증과 견식을 엿볼 수 있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헬라를 방문한 그는 철학에 미친 자를 만난다. 태양이 무슨 색인지 말씨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미치광이는 태양은 없다고 주장한다. 이데아의 개념을 들이대며 육안으로 보이는 것과 진짜 태양은 다르다고 결론짓지만 결국 지금도 선명하게 보이는 저 태양은 설명하지 못한 채 끝이 난다. 돌아온 아하스 페르츠는 예수를 소문으로만 듣다가 광야에서 마주한다. 이를 성경에 나오는 광야에서의 시험으로 묘사했다. 그는 예수가 정말 신의 아들이라면 당장의 빵과 목마름을 채워주길 바랐다. 예수의 대답은 말씀에 집중하면 구원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식이었다. 낙담한 그는 예수와 정반대의 길을 걸어간다.

    인간의 욕망, 자유, 사회적 문제 등 우리는 끊이지 않는 고통과 육체를 지니고 땅에 발을 붙이며 살아간다. 이해할 수 없는 비극이 일어났을 때 신은 없다고 절규하기도 한다. 당장의 빵이 급한 사람들에게는 신의 은총이니 뭐니 중요하지 않다. 현실에서 갈급한 자유와 정의를 외치는 우리들에게는 내세의 구원은 동떨어진 얘기일 것이다. 사람이기에 가질 수 있는 아하스 페르츠의 의문은 성경에서 사탄으로 그려진다.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이 질문들을 사탄으로 규정함으로써 입막음하려고 한다면 기독교는 더 이상 종교로서의 본기능을 잃어버릴 것이다. 우리가 진정 사람의 딸, 아들이기에 신의 시선이 아닌 사람의 시선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예수의 차분한 말씀보다 아하스 페르츠의 차가운 비아냥이 더 끌렸던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그저 말씀, 종교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였다. 지금도 우리가 매순간 마주하는 현실에 대한 절규다. 우리의 마음 속엔 아하스 페르츠가 있다. 계속 눈을 감고 귀를 닫을 것인가 아니면 그를 인정하고 온전히 받아들일 것인가.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뿌리깊은 시대의 문제를 함께 고민해보고 나아가는 장을 만들어줄 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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